그저 선하고 착한 것 같아보여서 순진한 시골총각이라 직장도 있고….

신청인은 평범한 가정의 맏딸로 태어나,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어려운 것 모르고, 부모님 밑에서 직장생활하며 편안하게 처녀시절을 보냈습니다.
소심한 성격 탓인지 남자에게 관심이 없어, 결혼에도 관심이 없었는데, 2살 아래의 여동생이 남자친구가 생겨 부모님이 저의 결혼을 서두르게 되었고,
소개로 남편을 만나 서로를 잘 알기도 전에,,, 그저 선하고 착한 것 같아보여서 순진한 시골총각이라 직장도 있고, 시댁도 시골에서 농사도 많이 짖고, 땅도 많이 있다고 하여 아무 생각 없이, 3개월 만에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보니 남편은 사회생활도 얼마 안 해봤고 아버님이랑 농사일하다가 취직한지 얼마 안 되었고, 시댁의 땅도 아버님 소유가 아닌 종중땅이었습니다. 아무튼 여러 가지로 실망이 되었지만 내가 선택한 것이니 이혼도 할 수 없어 그냥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그런 중에 연년생으로 아들과 딸을 낳고, 큰애를 어린이 집에 보내면서 은행 융자를 끼고 빌라로 이사를 하였는데, 그때부터 육아비에 대출금 이자에 남편의 적은 월급으로는 감당이 안 되어 많은 시간 동안 어렵게 지내다가 남편마저 음주운전으로 직장까지 그만두게 되었고, 할 수 없이 카드 현금서비스까지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수입이 없으니 생활은 점점 어려워지고, 주위 사람들에게 손을 벌릴 수도 없어 급한 대로 카드론도 써가면서 아이들 교육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시아버님이 교통사고로 중환자실에 3년정도 입원을 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남편은 아예 일할 생각도 안하고 병간호를 핑계로 병원에서 생활하였습니다.
그동안은 일용직이라도 다니면서 가끔씩 생활비를 주더니, 그마저도 그만두고 아예 병원에서만 생활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저기 아르바이트를 다니면서 카드값 메꾸기 바빳고, 점점 늘어나는 이자에 생활비에 정말 죽고만 싶었습니다.
하지만 불쌍한 아이들이 눈에 밟혀서 죽을 수도 없고, 하루하루 견디고 있는데, 어이없게 큰아이가 핸드폰 사기로 900만원이라는 큰돈을 사기 당하였습니다. 정말 하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은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시름에 빠져 있는데 주위에서 개인회생 제도를 알려주어 마지막 희망의 끈을 잡고자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존경하는 판사님!
모두 다 제 잘못입니다. 힘들어 졌을 때 좀 더 일찍 현실을 직시하고 정신을 차렸어야 했는데,,,

없으면 쓰지 말고, 내가 가진 것 안에서만 써야했는데,,, 카드 무서운 줄 모르고 살은 제 잘못입니다.
너무 늦게 깨달았지만 이제라도 남은 생은 더 열심히 정신 차리고 살겠습니다.
개인회생을 허락하여 주시면 앞으로는 빚지지 않고, 아이들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겠습니다.
부디 용서하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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